본문 바로가기
  • A Life's Searcher by Essence, a Steward of Nature by Profession, and a Storyteller by Passion
K-Story

북한 소설로 읽는 북한 사회의 '내밀한' 이야기 with 오창은 선생님

by Life's Searcher 2021. 10. 6.
728x90
반응형

오늘 우리 회사 우리 부서에서는 '부서학습'이라는 걸 진행했다.

학습을 장려하는 우리 회사는 매년 일정시간 이상의 학습 시간을 채워야 한다.

이번 부서학습은 그 일환으로 추진되어, <친애하는, 인민들의 문학 생활>의 저자 오창은 선생님을 모시고 진행되었다.

 

오창은 선생님은 문학평론가이자 중앙대학교 다빈치교양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시다.

나중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안 사실이지만, <녹색평론> 고 김종철 선생님과도 인연이 깊으신 분이었다.

생각해보니 <녹색평론>에 실린 글들 중에 오창은 선생님이 쓴 글을 본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이번에 오창은 선생님을 처음으로 만나뵈었다. 

선생님의 친근하고 다정한 인상에 나도 긴장이 풀렸다.

<친애하는, 인민들의 문학 생활> 앞 표지

이번 부서학습에서 오창은 선생님은 한 시간 정도 강연을 해주시고, 이후 한 시간 정도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워낙 흥미롭게 이야기 해주셨기에 다소 생소한 주제였음에도 참가자들은 많은 질문을 했다.

이번 강연은 "북한 소설로 읽는 북한 사회의 내밀한 이야기: 북한 민중의 삶, 사랑, 공동체와 개인"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선생님은 우선 평양 사진을 한 장 보여주시며, "비유럽 지역에서 가장 유럽적인 도시"라는 평을 받는 평양의 모습 한 면을 보여주었다. 그 주요 이유는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상태에서 도시계획을 통해 만든 도시가 바로 평양이라는 것이다.

 

북한에는 주체 사상과 세계와의 개방적 소통 사이 긴장이 흐른다. 

주체 사상을 강조하며 내부 결속을 중시하는 북한이지만, 세계적 흐름에 민감하고 그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김일성종합대학에 김정일은 친필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기도 했다.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

북한 사회의 특수성과 세계의 보편성이 만날 수 있는 지점에 대해, 혹은 양자 사이의 긴장에 대해 오창은 선생님은 북한 문학, 그중에서도 특히 북한 소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주셨다.

다음은 북한 문학의 특징 두 가지이다.

첫째, 북한 소설은 외부(외국인)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내부 독자만 의식해서 창작된다. 

예컨대 북한 고난의 행군 시기에 사람들이 겪은 비참한 모습이 문학 작품에는 그려지고 있다.

이를 통해, 북한 사회의 내밀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바로 문학을 통해 읽어낼 수 있다는 명제가 성립한다.

둘째, 혁명전통을 계승하는 건 북한 사회의 주요한 화두인 만큼, 북한 문학작품에서도 이를 많이 다루고 있다.

이때 혁명전통이란 특히 일제강점기 항일투쟁을 의미한다.

한국에서 일제강점기 항일투쟁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혹은 안하는) 것과 대조된다.

나는 중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일제강점기 항일투쟁에 대해 배웠다. 그리고 그 이후 성인이 되어서는 이에 대해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내가 일부러 탐색하지 않는 한 이는 잊혀진 과거로 남아 있는 것이다.

<친애하는, 인민들의 문학 생활> 목차 중 일부

선생님은 최근 북한 소설 중 주목할 만한 작품을 3개 추천해주셨다.

김혜인의 <가보>, 김철순의 <인연>, 서청송의 <나의 영원할 수업> 등이다.

북한에서 문학 작품을 발간하려면 엄격한 검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기에 북한 문학에는 체제나 수령에 대한 예찬, 이데올로기, 집단주의 등과 관련된 내용이 많이 등장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러한 작품들 속에서도, 그리고 비록 소설의 대부분이 그러한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있다 할지라도, 비체제적이고 민중적 관점에서 작품을 읽는다면 일말의 균열, 상상력, 다른 생각 따위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오창은 선생님의 생각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북한 문학 작품을 읽을 때, 우리는 북한 사회의 내밀한 이야기를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오창은 선생님도 인정했다. 북한 문학이 예전과 달라졌다기보다는 작품을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그렇기에 예전엔 읽어내지 못했던 것을 최근 문학 작품에서 읽어낼 수 있다. 

실제로 선생님은 위에서 언급한 작품 3개의 줄거리를 차례로 설명하시면서 본인의 방식으로 해석한 내용을 말씀해주셨다. 

나는 놀라움과 통쾌함을 동시에 느꼈다. 북한 작가들이 그 무수한 검열 속에서도 이런 내용을 소설로 형상화할 수 있다는 거에 대한 놀라움, 그리고 북한 주류 혹은 강요된 생각과는 다른 생각과 다른 상상력을 소설 속에 은근히 드러내고 고리타분한 현실을 비판하는 듯한 모습에 대한 통쾌함.

한국 문학도 주류 이데올로기, 체제 따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현대 북한 소설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이게 아닐까? 

비주류의 관점, 비체제적 관점, 민중적 관점에서 바라본 사회를 형상화하는 것, 그를 통해 좀더 나은 사회를 상상하는 것.

사실 나는 오늘 부서학습 전에 책을 읽지 못했다. 하지만 오창은 선생님의 강연을 듣고, 책을 읽고 싶어졌다.

그리고 선생님이 소개해주신 주목할 만한 북한 소설 3개도 원문은 어렵겠지만, 비평문이라도 읽고 싶다.

갑자기 김해자 선생님의 <시의 눈, 벌레의 눈>이라는 시평에세이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아마 오창은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비체제적, 민중적 관점과 '벌레의 눈'이 맞닿아 있기 때문은 아닐까.

나도 그런 시각으로 세상을 읽고 상상하고 싶다.

<친애하는, 인민들의 문학 생활> 뒷 표지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