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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 Life's Searcher by Essence, a Steward of Nature by Profession, and a Storyteller by Passion

제주4.33

[제주4.3 ③] 포기할 수 없는 제주도 1948년 4월 28일, 제주도에 있는 한 학교에서 경비대 제9연대장 김익렬과 무장대 총책임자 김달삼이 논쟁을 벌였다. 이는 국군과 무장대 간의 유혈 충돌을 막기 위한 평화협상이었다. 이 협상에서 양측은 전투를 완전히 멈추고, 무장해제를 할 것에 합의를 이루었다. 그러나 사흘 뒤, 제주도 오라리 마을에서 방화 사건이 발생했다. 불타는 오라리 마을은 때마침 미군 정찰기가 공중에서 촬영한 영상에 담기게 되었다. 미군과 경찰은 무장대가 방화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이틀 뒤, 미국은 경비대에 무장대를 총공격하라고 명령했고, 이로써 평화협상은 깨져버렸다. 그리고 이 협상을 추진했던 김익렬 연대장은 해임되었다. 오라리 마을에 방화 사건이 발생한 지 40여 년 후, 방화범은 경찰이 지원한 우익청년단 단원들로 밝혀졌다.. 2022. 6. 13.
[제주4.3 ②] 진짜 권력자 1948년 10월 17일, 제주도에서 한국군 제9연대장 송요찬은 포고문을 발표했다. "군은 한라산 일대에 잠복하여 천인공노할 만행을 감행하는 매국 극렬분자를 소탕하기 위하여 10월 20일 이후 군 행동 종료기간 중 전도 해안선으로부터 5km 이외의 지점 및 산악지대의 무허가 통행금지를 포고함. 만일 차 포고에 위배하는 자에 대하여서는 그 이유 여하를 불구하고 폭도배로 인정하여 총살에 처할 것임" 당시 제주도에는 해안선에서 5km 이외 중산간 지대에 있는 1백여 마을에 주민 수만 명이 살고 있었다. 이 포고문으로 인해 중산간 지대 주민들은 대량 학살되었고, 가옥 4만 여 채가 불에 탔다. 이 초토화작전은 한국군이 집행했지만, 당시 한국군과 경찰에 대한 작전 지휘권은 미군이 갖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진짜 .. 2022. 5. 14.
[제주4.3 ①] 저항의 대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1947년 3.1절 28주년 기념식이 열린 제주북국민학교 운동장에는 많은 제주도민이 모였다. 기념식에 모인 사람들은 "3.1 정신으로 통일 독립 전취하자!", "친일파를 처단하자!", "양과자를 먹지 말라!" 등등 여러 구호를 외쳤다. 기념식이 끝나자 제주도민들은 관덕정 광장으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기마 경관이 탄 말에 한 어린아이가 치여 쓰러졌지만, 그 경관은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가던 길을 가려고 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이에 분노한 제주도민들은 그 기마 경관을 쫓아갔고 돌을 던지며 항의했다. 그 기마 경관은 경찰서 쪽으로 도망갔고 이어서 경찰들이 발포한 총성 몇 발이 울려퍼졌다. 이로 인해 제주도민 6명이 숨지고, 8명이 총상을 입었다. 희생자들은 당시.. 2022.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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