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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tory

[제주4.3 ①] 저항의 대가

by Life's Searcher 2022.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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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런 건 아니지만, 1947년 3.1절 28주년 기념식이 열린 제주북국민학교 운동장에는 많은 제주도민이 모였다. 기념식에 모인 사람들은 "3.1 정신으로 통일 독립 전취하자!", "친일파를 처단하자!", "양과자를 먹지 말라!" 등등 여러 구호를 외쳤다. 기념식이 끝나자 제주도민들은 관덕정 광장으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기마 경관이 탄 말에 한 어린아이가 치여 쓰러졌지만, 그 경관은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가던 길을 가려고 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이에 분노한 제주도민들은 그 기마 경관을 쫓아갔고 돌을 던지며 항의했다. 그 기마 경관은 경찰서 쪽으로 도망갔고 이어서 경찰들이 발포한 총성 몇 발이 울려퍼졌다. 이로 인해 제주도민 6명이 숨지고, 8명이 총상을 입었다. 희생자들은 당시 현장 근처에서 사태를 관람하던 사람들이었지만, 경찰은 그 발포가 정당했다고 주장하며 시위 주동자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경찰의 발포와 태도에 분노한 제주도민들은 민관 합동 총파업에 나섰다. 이 총파업에는 제주 출신 경찰관들도 동참했다. 당시 한반도 남쪽을 점령하고 있던 미군정은 이 총파업을 좌익이 조직적으로 선동한 것으로 보고 제주도를 '붉은 섬(Red Island)'으로 규정하며 파업과 관련 있는 제주도민들을 잡아들였다. 그리고 그즈음 한반도 이북에서 이남으로 내려온 서북청년회 단원들이 '빨갱이 사냥'을 위해 제주도로 파견되어 각종 테러를 자행했다. 남조선노동당 제주도위원회는 이에 맞서 무장투쟁을 하기로 결정하고, 1948년 4월 3일 새벽, 12개 경찰지서, 우익 단체 요인의 집과 사무실을 동시에 습격했다. 제주도민들에게 발표한 성명 속에서 무장대는 통일국가 건립을 가로막는 5.10 단독선거를 반대하고 탄압하면 항쟁으로 대응하겠다고 선언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1948년 5월 10일로 예정된 남한 단독선거를 앞두고 제주도민들은 산으로 피난했다. 그리고 제주도는 5.10 단독선거를 거부한 남한의 유일한 지역이 되었다. 

이렇듯 1945년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이후 제주도민들은 통일된 조국을 꿈꾸고 탄압에 저항하였고, 이후 그들이 치러야했던 대가는 다음과 같다.

추정되는 사망자 약 25,000에서 30,000명(이는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 이상이고, 이 중 여성, 61세 이상 노인, 10세 이하 어린이가 30% 이상을 차지한다.)

'잃어버린 마을' 130여 개

고문과 후유증, 그리고 트라우마

강요된 침묵과 '기억의 자살', ...

제주4.3의 상징, 동백꽃

 

<참고자료>

제주4.3평화재단, 4.3평화기념관 핸드북: 한눈에 보는 4.3

허영선, 제주4.3을 묻는 너에게,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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