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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tory

안녕, 이주노동자, 미누

by Life's Searcher 2022.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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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청년 미노드 목탄(Minod Moktan)은 1992년 돈을 벌러 한국에 왔다. 한국어도 못 했던 그가 가진 거라고는 관광 비자뿐이었다. 그가 한국에서 처음 취직한 곳은 식당이었다. 그의 이름을 어렵게 느낀 한국인 직장동료는 그에게 '미누'라는 별명을 지어주었고, 그때부터 그는 한국에서 '미누'로 불리게 되었다.

 

노래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던 그는 작업장에 있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한국 노래를 따라 부르며 한국어를 배웠다.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가요제와 외국인 노래자랑에서 수상한 그는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노래하는 미누. 출처: https://wspaper.org/article/21089

 

2003년, 한국 정부는 외국인 산업연수생제도의 폐해를 바로잡기 위해 고용허가제라는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결정했다. 외국인 산업연수생제도는 한국 중소기업에서 외국인을 노동자가 아닌 연수생 신분으로 고용하도록 하여 외국인의 미등록 체류와 인권 침해 등 여러 문제를 야기하고 있었다. 이와 달리 고용허가제는 한국에서 일하고자 하는 외국인에게 노동자의 지위를 인정하는 제도이다. 고용허가제 도입을 앞두고 한국 정부는 국내에 거주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대대적으로 단속하여 강제 추방하기 시작했다. 

 

그즈음 미누는 작업장에 있는 라디오에서 불법체류자를 신고해달라는 방송을 들었다. 비자 없이 한국에 머무는 '불법체류자'였던 미누는 비참한 기분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1997년 IMF 위기 때, 사장님, 사모님과 셋이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가며 회사를 지킨 그였기 때문이다. 자신을 한국 사람과 다르지 않고, 한국에 도움이 되는 존재로 여겼지만 한국 정부에게 그는 '불법체류자'일 뿐이었다.

 

정부의 단속과 강제 추방의 아수라장 속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도망하다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자살하기도 했다. 무려 11명이 연달아 자살했다. 이러한 상황에 항의하기 위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농성을 시작했다. 워낙 다양한 국적을 지닌 사람들이 모였기에 농성장에서 소통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고,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또 죽은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미누는 쉬운 노래를 만들어 함께 불렀다.

 

스탑크랙다운(StopCrackDown) 멤버들. 출처: https://www.google.com/url?sa=i&url=https%3A%2F%2Fm.socialfunch.org%2Fminu-love&psig=AOvVaw0b7U6vPA30od8RuEr-oCau&ust=1647837574177000&source=images&cd=vfe&ved=0CAsQjRxqFwoTCPDvkcnv0_YCFQAAAAAdAAAAABAD

 

그 연장선에서 그는 이주노동자들로 구성된 밴드를 결성했다. 당시 농성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외쳤던 구호 중 하나인 "Stop Crackdown(탄압을 중단하라)"은 그 밴드의 이름이 되었다. 네팔 사람, 미얀마 사람, 인도네시아 사람, 그리고 한국 사람으로 구성된 밴드 스탑크랙다운(StopCrackDown)은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현실과 소망을 노래에 담아 불렀다. 

 

오 사장님 이러지 마세요

그동안 밀린 내 월급을 주세요

날 욕한 건 참을 수 있어요

내 월급만은 돌려주세요

-<월급날> 중에서

 

리드보컬인 미누는 공연할 때마다 빨간 목장갑을 끼고 무대에 올랐다. 손바닥 부분이 빨간, 노동자들이 작업할 때 사용하는 그 장갑을 미누는 손가락 부분만 잘라내어 착용했다.

 

출처: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hdufo&logNo=221172420124

 

2003년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이 거세지자 11명이나 잇달아 죽었지만 주류 언론에서 그 소식을 접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미누는 동료들과 함께 '이주민방송'을 시작했다. 이주민방송은 이주민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통로가 되었다. 이외에도 미누는 이주 노동자 영화제, 이주민 미디어 교실, 교육 등 여러 활동을 하며 한국인과 이주민 사이에 다리를 놓기 위해 노력했다.

 

2009년, 미누가 한국에서 생활한지 18년이 되어 가는 시점에 출입국 관리 사무소 직원들은 그를 그의 집 앞에서 체포했다. 미누의 석방을 요구하며 많은 이가 연대했지만, 끝내 그는 며칠 뒤 네팔로 강제 출국을 당했다. 그는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그간 나는 이주민과 한국인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일했다.
이러 방식은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한국을 비하하는 것과 같다.
나는 한국이 걱정된다. 한국이 사랑받지 못하는 나라가 될까봐..."

 

네팔에서도 한국을, 한국에 있는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살던 그는 2018년에 꿈에 그리던 한국 땅을 밟게 된다.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안녕, 미누>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되어 특별 체류 허가를 받아 한국에 잠시 올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제 여한이 남지 않아서였을까? 그는 한국에 다녀간 지 한 달 정도 뒤에 네팔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2020년 미누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를 기억하기 위해 "미누상"을 제정했다. 그리고 미누가 바란 것처럼 이주민들이 한국 사회에서 더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데 기여한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매년 상을 수여하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증가하는 만큼,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작업 현장에서 사망하는 이주노동자들도 증가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이주민들을 우리 이웃으로, 아니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된 걸까?

 

이주노동자 다국적 밴드 스탑크랙다운(StopCrackDown)의 노래 중에는 <We Make Korea>라는 노래가 있다. 

 

작업복에도 아름다운 일꾼

피땀 흘리면서 당당하게 살아간

세상을 바꾸는 한국을 만드는 노동자

We make Korea We make Korea We make Korea

We love Korea

-<We Make Korea> 중에서

 

"우리가 무시되거나 동정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저 평범한 이웃으로, 함께 일하는 동료 노동자로 봐줬으면 한다."  -미누

 

 

<참고자료>

-이란주, <나의 미누 삼촌>, 우리학교

-전종휘, '미누' 없는 세상을 위하여, 한겨레 21, 2020

-박소희, '안녕, 혐오' 미누의 아픔 반복되지 않기를, MBC, 2020

-정혜실,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이자 활동가였던 미누를 기억하는 방식, MWTV, 2020

 

-지식채널e, <17년 8개월>

-지혜원, <안녕, 미누>,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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