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WHO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300만 명 이상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세계 인구의 약 4.4%에 해당하는 숫자다.
우울증 환자는 한국에서 시간이 갈수록 급증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0년 사이에 전체 우울증 환자는 57.5% 증가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2, 30대에서 우울증 환자가 증가하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같은 기간 20대 우울증 환자는 189.4% 늘었다. 예전에는 5, 60대 우울증 환자가 가장 많았는데, 작년에는 20대 환자가 가장 많게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는 '코로나 블루'를 초래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 따르면 2020년 코로나 블루를 경험한 사람 비율은 40.7%였다. 특히 여성 50.7%, 남성 34.2%로 코로나 블루는 여성들에게 더 많이 나타났다. 올해 상반기에는 전 연령을 통틀어 20대 후반 여성에게서 우울증 환자가 가장 많이 나타났다. 특히 2021년 상반기에 10대부터 30대 중반까지의 여성 가운데 우울증 환자는 2017년과 비교했을 때 2배 이상 증가하였다. 이러한 코로나 블루는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쳤지만, 코로나19 이후 우울 수준 지표를 보면, 한국은 OECD 15개 국가 중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특히 코로나 블루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우울증은 낮은 자존감이나 죄책감, 그리고 삶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의 감소를 특징으로 하는 감정적 상태이다. 슬픔, 절망감, 비관, 자기 폄하, 생기 없음, 식욕 감퇴, 불면증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단순한 슬픔이나 애도와 달리 우울증은 길고 심각한 양상을 띤다. 앞서 살펴본 통계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우울증은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많이 나타나고, 20대에 주로 시작한다.
우울증의 원인은 다양해서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특히 청년들의 삶을 살펴보면, 취업 경쟁을 위한 스트레스가 우울증에 크게 영향을 주는 것 같다. 하지만 취업 이후에 회사를 다니면서 겪는 우울증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일을 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미소로 숨겨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감정 노동자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온갖 진상 손님들을 '미소로' 상대해야 하는 그들에게 우울증은 특히 쉽게 찾아올 수밖에 없다.
청년 우울증과 부모의 경제력 사이의 연관성에 관한 흥미로운 통계가 있다. 부모의 경제력이 낮을수록 청년이 느끼는 우울감이 높게 나타나는 반비례 관계가 발견되었다. 이러한 통계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우울증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사회적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울증 상담을 전문가에게 아무리 성심껏 받아도 개인이 처한 현실적 상황(예컨대, 취업 문제)이 개선되지 않는 한 우울증은 재생산될 수 있다.
물론 우울증을 진단하는 기술과 방법의 발달은 세계, 특히 서구에서 우울증 환자가 증가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우울감은 명백히 존재하기에 왜 오늘날 우울증이 세계에 만연해 있는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 William Davies는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능력주의를 우울증을 유발하는 한 요소로 제시한다. 능력주의에 따르면 개인이 처한 사회적 지위는 자신이 노력한 결과 얻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열심히 노력하면 원하는 걸 성취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따라서 원하는 걸 성취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비난이 쏟아질 수 있고, 이는 죄책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현대 사회는 승자독식 사회로서 다수의 패자와 소수의 승자가 존재한다. 소수의 탁월한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개인이 가진 모든 순간과 모든 자원은 '자아실현'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집, 좋은 차 따위는 '성공'의 지표가 되었다. 이러한 획일적 지표는 사람들 사이에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든다. 그 경쟁과 강박 속에서 다수는 지쳐간다. 이처럼 획일적 잣대로 사람들을 줄 세우는 게 아니라 다양한 능력이나 자질을 사회가 인정해준다면 사회 구성원들은 안전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불행은 인간의 정상적 특징이고, 고통은 건강한 신체의 특징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에 건강은 고통이나 불행의 반대편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관념이 생겨났다. 나아가 직장에서 긍정성과 활력이 경제적 가치의 원천으로 여겨지면서 부정적 태도는 교정되어야 할 결함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정신 건강에 대한 책임이 개인에게 전가되었고, 문제 해결 또한 개인이 전적으로 담당해야 하는 영역이 되었다. 혹자는 본인 인생의 우선순위에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을 두었기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 '다른 것'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남들의 인정, 사회적 성취, 주위 사람들, 직장에서의 성과 등등. 이러한 고백에서 알 수 있는 건 우울증의 원인을 개인적 차원에서 찾는 경향이다. 다음과 같은 질문도 필요하지 않을까? '왜 우리는 우리 인생의 우선순위에 자기자신을 둘 수 없을까?'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에는 완치가 없고, 꾸준한 돌봄이 있다는 말이 있다. 그러한 돌봄에는 분명 개인이 할 수 있는 게 있을 것이다. 예컨대, 자신이 이룬 작은 성취를 칭찬하는 것, 그리고 개인을 낙담하게 하는 것들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 등은 우울증을 멀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우울증을 유발하는 사회적 요인을 무시할 수 없다면, 사회적 노력도 기울여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나 자신에게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들과 꾸준히 어울리며 서로의 상태를 이야기하고, 공감하는 활동을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울증을 잘 돌보기 위한 사회적 노력의 출발점이 아닐까?
<참고자료>
국회입법조사처, <이슈와 논점> 제1880호 '코로나19 대유행'이 가져온 정신건강 위기와 대응 정책과제
순천향대신문, 삶이 버거운 20대, 급증하는 청년 우울증, 2019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청년, 코로나에 더 우울한 이유와 해소방법은, 2021
메디칼옵저버, 20대 후반 여성 올해 우울증 가장 많이 앓아, 2021
PODO포도 네이버 블로그, 정신과 병원비, 나는 왜 우울증에 걸렸을까?
CounterPunch, Mental Health and Neoliberalism: an Interview with William Davies, 2017
CounterPunch, The Social Burden of Depression in Japan, 2019
*유튜브
닷페이스, 여러분, 심리 전문가들도 우울증 겪을 수 있습니다.
[명견만리 Q100] 개천용은 옛 말! 청년 우울증이 증가하는 이유는?
울음 꾹꾹 참으며 털어놨던 나의 우울증|청년 우울 나누기 콘서트
마음이 아팠던 청년들의 정신과 후기(feat. 우울증, 공황장애)
'K-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YH무역과 여성 노동자들 (2) | 2022.02.01 |
---|---|
크리스마스는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0) | 2022.01.15 |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를 추모하며 (0) | 2021.12.05 |
퍼스널 브랜딩(Personal Branding), 상품화 시대의 자화상 (0) | 2021.11.26 |
전기와 육식에 중독된 일상과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한 성찰 (0) | 2021.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