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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tory

전기와 육식에 중독된 일상과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한 성찰

by Life's Searcher 2021.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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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녹색당 당원으로서 열심히 활동하지는 못 했지만 녹색당에서 이런저런 소식을 접하면서 밀양 송전탑 건설 문제를 알게 되었다. 신고리 핵발전소 3호기에서 나오는 전력을 대구를 비롯한 영남 지역으로 보내기 위해 한전은 765kV의 대규모 송전선로를 짓고자 했다. 이에 밀양 주민들은 송전선로가 마을을 너무 가까이 지나기 때문에 송전탑 건설에 반대했다. 한전에서 공사를 하기 시작한 2007년부터 밀양 주민들은 줄곧 반대를 해왔다. 그 와중에 마을 어르신 두 분이 분을 이기지 못하시고 자살을 선택했다. 또한 마을 공동체가 분열되기도 했다. 녹색당은 탈핵을 주장하고 지역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을 추구하는 정당이기에 밀양 송전탑 건설 문제에 적극 개입했다. 그 영향으로 나도 이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과 관련해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한 문장이 있다. 그건 바로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라는 말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전기,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전기가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고통을 안겨주고 있었던 것이다. 밀양 송전탑 문제를 통해 나는 우리나라 전력 시스템에 대해서 처음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것은 지방 해안가에 대규모 발전소를 짓고, 커다란 송전탑을 통해 전기를 대도시에 보내는 시스템이었고, 지역 불평등 문제만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 건강상 피해와 재산상 피해 등 여러 피해를 떠넘기고 있었다. 하루는 공공장소에서 TV로 밀양 송전탑 관련 뉴스를 보고 있는데, 한 어르신이 밀양에 보내는 전기를 끊어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 어르신이 보기에는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송전탑 건설을 막는 밀양 주민들이 이기적인 사람들로 보였을 것이다. 실제로 거대 언론은 그들을 지역 이기주의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로 몰아갔다. 그리고 정부와 한전은 국민들에게 원활하게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송전탑이 필요하다며 자신들을 ‘공익의 대변자’로 치켜세웠다. 반면에 원활한 전력 공급을 가로막는 밀양 주민들을 사익에 매몰된 사람들로 묘사했다. 전기가 어떻게 만들어져서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는지 모른 채 주는 대로 전기를 받아쓰는 국민들은 대규모 송전탑을 더 짓기 위한 구실을 제공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밝혀진 자료에 따르면, 송전탑은 영남권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필요한 게 아니라 더 많은 핵발전소를 짓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전기를 그토록 많이 공급하려는 이유는 기업들이 전기를 싼 값에 많이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결국 나는 정의롭지도 않고 자유롭지도 않은 전기소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쓰는 전기로 인해 타인이 고통 받는다는 점에서 내 전기소비는 정의롭지 못하다. 그리고 한전이 공급해주는 대로 전기를 쓰고, 더 많은 핵발전소와 송전탑을 짓는 것을 정당화해준다는 점에서 내 전기소비는 자유롭지도 못하다. 2014 6월에 정부는 행정대집행으로 밀양에 있는 반대 농성장을 강제로 철거했고, 연말에 송전탑을 완공했다.

 

출처: http://www.greenpost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567

2017년 10 20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 과정에 참여한 시민 471명은 공사 재개라는 결정을 내렸다. 무작위로 뽑힌 시민들이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합숙과 토론을 하며 결정을 내렸고, 이 결정을 정부가 따랐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 숙의민주주의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민참여단 구성에서 핵발전소와 송전탑 인근 지역 주민들이 배제되었고 핵발전소 건설에 따른 부담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청소년들도 배제되었다. 핵발전소나 송전탑 인근 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의견이 지닌 무게와 대도시에 살며 전기를 지방에서 공급 받기만 하는 주민들의 의견이 지닌 무게는 같지 않다. 현대 전력시스템의 그늘진 곳에 있는 목소리까지 시민참여단에 담아내려했다면 지역별로나 세대별로 구성을 다양하게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우리는 시민참여단에서 어떤 토론 과정을 거쳐서 어떤 논리로 공사 재개라는 결정을 내렸는지 모른다. 시민참여단에서 내린 결정이 더 투명하려면 결론을 내리기까지의 과정과 근거를 공개했어야 한다. 중요한 의사결정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결정을 내렸다는 점에서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 위원회는 의미가 있지만, 이처럼 한계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신고리 5, 6호기 공사를 재개할지 여부를 핵발전소 인근 부산, 울산, 경남 지역 주민들이 결정했다면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지 의문이다.

 

내가 『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서인지 우리가 일상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사람들의 정서나 사회구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나는 관심이 많다. 경제개발로 인해 라다크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급격히 바뀌자 사람들의 정서와 사회구조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밀양 송전탑 문제를 보면서도 사람들이 지금처럼 전기를 사용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이나 자연환경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또한 지금처럼 전기를 사용하는 방식이 더 많은 핵발전소, 더 많은 송전탑을 건설하는 구실을 제공해준다는 사실도 절감했다. 내가 쓰는 전기가 어디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오는지 모르는 채 전기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이 정의롭지 못한 시스템에 기여하는 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지금처럼 전기를 소비하는 방식은 약자를 희생시킬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원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내 삶에 대한 결정권을 갖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전기공급자인 한전에 에너지에 대한 결정권을 빼앗기고 있기에 이 시스템은 민주적이지 않은 것이다.

 

 

전기뿐만 아니다. 우리는 거의 매끼마다 고기반찬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고기 소비가 늘어난 이유는 공장식 축산을 통해서 고기가 대량생산되기 때문이다. 또한 대량생산되기 때문에 고기 값은 저렴하다. 공장식 축산도 에너지 시스템처럼 약자를 희생시키고 있다. 동물들이 끔찍한 고통 속에서 사육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류독감이나 구제역 같은 전염병이 이제 거의 매년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는데 공장식 축산의 비위생적인 환경은 이러한 전염병이 확산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수많은 동물을 생매장하는 방식으로 죽이고 있고, 이 비용으로 어마어마한 국가 예산이 쓰이고 있다. 이처럼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공장식 축산은 늘어난 육류 소비를 지탱해준다는 명목으로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핵마피아들이 국민들에게 값싼 전기를 충분히 공급하기 위해 핵발전소를 더 지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국민들에게 값싼 고기를 충분히 공급하기 위해 공장식 축산이 계속돼야 한다고 정부는 말하는 것이다. 공장식 축산을 바꾸면 고기 값은 오르게 된다는 말 앞에 합리적 토론과 대안 모색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국민들의 대량 육류 소비를 가능하게 해주는 정부가 국민들을 볼모로 삼고 정의롭지 않은 공장식 축산을 지속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국민들은 먹을거리에 대한 결정권을 갖지 못하고 있기에 이는 민주적이지도 않다.

 

 

우리가 전기를 소비하고 고기를 소비하는 일상적 삶의 방식이 정의롭지도 않고 민주적이지도 않은 사회구조를 지속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말로만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고,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그 말이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전기와 육류 소비를 줄이고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기와 육류를 소비한다면 정부가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현재의 사회구조를 지속하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사회구조가 우리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치듯이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방식도 사회구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삶의 방식만 바꾸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믿지는 않는다. 오히려 『오래된 미래』의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깨달았듯이 삶의 방식, 즉 문화가 개인의 특성을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일상에서 지금보다는 더 주체적이고 정의로운 삶의 방식을 택한다면, 정치적으로도 더 활발한 주체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정치를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얘기하고 문제를 풀어가는 공공영역이라고 한다면, 일단 공동체가 있어야 정치가 가능하다. 살아 있는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한 삶의 기술들도 우선 공동체가 있어야 실천할 수 있다. 오늘날을 지배하는 삶의 방식이 고립과 수동성,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무책임을 특징으로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다른 삶의 방식은 협동, 주체성,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밥을 먹고, 전기를 쓰고, 일을 하는 구체적인 일상에서부터 지금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모색한다면 말 그대로 민주주의를 살아 있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선거일에 투표하는 것만이 아니고, 여론조사에 응답하는 것만도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희망이란 정직한 절망 뒤에도 그 절망에 굴하지 않게 해주는 아주 자그마한 힘이라고 생각한다이런 점에서 희망은 맹목적 낙관과는 다르다현실이 아무리 절망스럽더라도 그걸 있는 그대로 자세히 파악하고‘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고함께 실천해나가는 행동이 바로 희망하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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