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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tory

퍼스널 브랜딩(Personal Branding), 상품화 시대의 자화상

by Life's Searcher 2021.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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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다니기 싫어지는 때가 있다. 일에서는 별 의미를 못 느끼고, 주어지는 일만 기계처럼 처리하고, 밥벌이 장소라는 것 말고는 회사에 어떤 애정도 못 느끼고, 부서 막내로서 허드렛일만 전담하는 것 같고...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가끔 나를 엄습한다. 

노동시간이라도 짧으면(단 두 시간만이라도 줄면) 좋겠으나,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그 다음날 점심 도시락을 싸고, 집안일을 하고 나면, 이제 자야 할 시간이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이 나를 찾아온다. '회사 그만두면 어떻게 먹고 살래?'

이 질문을 외면할 수 없기에, 나는 퇴사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유튜브를 통해 부업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찾아보았다.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그중 그나마 내게 적합한 부업은 이렇게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뿐이었다. 

이 블로그도 그렇게 해서 시작한 것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찾아보던 와중에 나는 퍼스널 브랜딩(Personal Branding)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접했다.

'나 자신'을 브랜드화하여 좋아하는 일을 하며 먹고 살 수 있다니, 마른 사막에 오아시스처럼 반가운 개념이었다.

특히, 일에서 얻는 수익보다 '의미'를 중시하는 내게는 매우 매력적인 말이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정체 모를 불편함이 생겨나고 있었다. 퍼스널 브랜딩에 대해 솟아오르는 이 불편한 느낌은 대체 뭘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퍼스널 브랜딩에 대해 알아보았다.

 

퍼스널 브랜딩이란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주기 위해 자신을 브랜드화하는 의식적 노력을 의미한다.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이미지 마케팅인 셈이다. 일반 기업의 브랜드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어느 시기부터 기업들은 자신들이 판매하는 상품뿐 아니라 '이미지'에 신경 쓰기 시작했다. 예컨대, 우리가 티셔츠에 표시된 '나이키' 이미지를 보고, 그 티셔츠에 호감을 느끼거나 신뢰를 갖게 되는 것이 바로 기업들의 판매 전략인 것이다. 개인을 어느 분야의 권위자로 위치짓거나, 어느 분야에서 신뢰를 쌓거나, 다른 경쟁자들과 차별화하는 전략을 쓰며 우리는 퍼스널 브랜딩에 성공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추동력 중 하나인 소비주의 문화는 개인에게서 사회적 정체성을 희석시키고, 대신 진정성, 자기실현, 개인의 욕망 따위를 중시했다. 사회적 정체성의 빈 자리를 차지한 건 기업의 소비전략인 '브랜드'였다. 미국에서 1970~80년대에 브랜드는 마케팅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었고, 진정성을 추구하는 브랜드는 상품을 개인의 해방 수단으로서 판매했다. 자신을 남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나 역시도 특정 브랜드 상품을 선호했던 기억이 있다. 그 브랜드가 바로 진정한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 된 것이다. 또한 내가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도, 그가 착용한 시계, 그가 입은 옷, 그가 신은 신발 따위의 브랜드로 그의 '가치'를 평가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처럼 기업의 전유물이던 브랜드가 1990년대 미국에서 '개인', '인격'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은 1997년 한 잡지에 실린 글 "당신이라는 브랜드(The Brand Called You)"에 잘 표현돼 있다. 이 글의 저자 Tom Peters는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우리 회사의 CEO들이다: '나라는 회사'인 것이다. 오늘날 사업에 종사하기 위해서는 '당신이라는 브랜드'의 헤드 마케터가 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Tom Peters, <The Brand Called You>

 

여기에 더하여 인터넷의 보편화와 소셜 미디어의 등장은 퍼스널 브랜딩을 더 널리 퍼뜨리는 데 기여했다. 그리고 온라인이라는 가상 공간에서의 성공은 오프라인 세계에서 현실적 보상으로 전환될 수 있다. 소셜 미디어가 퍼스널 브랜딩의 주요 수단이 되면서 온라인 공간에서 퍼스널 브랜딩을 관리·전파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이들도 생겨났고, 이들은 긱 이코노미(Gig Economy: 임시직 선호 경제)의 확산과 더불어 직업과 노동에 대한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오늘날에는 사용자들의 재능을 활용한 플랫폼 기업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다. 기업들은 판만 깔아주고, 사용자들이 그 판에서 활동하게 하며, 사용자들과 수익을 나누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 속에서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플루언서'는 기업들에게 매우 고마운 존재다. 그리고 사용자가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게 해주는 방법으로 퍼스널 브랜딩이 장려되고 있다. 오늘날 퍼스널 브랜딩이 확산되고 장려되는 배경에는 기업들의 이러한 이윤 창출 전략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퍼스널 브랜딩을 대표하는 인물은 '드로우앤드류'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인 것 같다. 나도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개념을 그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는 회사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퇴사하여 소셜 미디어를 통한 퍼스널 브랜딩을 통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퍼스널 브랜딩의 노하우를 가르치는 전문가가 되었다. 소셜미디어는 퍼스널 브랜딩의 가장 강력한 도구라고 말하며 그는 SNS의 목적을 정하고 그에 맞는 타겟층을 공략하기, 커뮤니티 해시태그를 통해 잠재 고객 찾기, 콘텐츠 안에 가치 담기 등 여러 전략을 사람들과 나누고 퍼스널 브랜딩을 시도해보려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먹고 살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퍼스널 브랜딩에, 불편한 감정이 드는 건 왜 일까? 아마 그건 이것이 결국 자기를 상품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르크스가 파악했듯이 자본주의는 인간 노동력을 상품화한다. 자본주의 역사 만큼이나 인간 노동력 상품화는 오래되었다. 퍼스널 브랜딩도 사실 이런 경향의 연장선상에 있을 뿐 전혀 새로운 논리가 아니다. 다만 퍼스널 브랜딩은 노동력뿐 아니라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인격, 성격, 재능, 열정 등등-을 상품화한다는 점에서 더 나아갔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일자리를 구할 때나, 직장에서 일 할 때만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력 상품을 판매하였고, 노동 시간 이외의 시간에는 온전한 개인으로 존재하였다. (물론 여가시간에는 주로 노동력 재생산을 해야 하지만.) 하지만 퍼스널 브랜딩으로 넘어오면, 인간이 상품으로 존재하는 시간과, 인간(혹은 자기자신)으로 존재하는 시간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게 된다.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 논리가 일상 속으로 더 깊이 침투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어떤 일을 내가 진정으로 원해서 하는 것인지, 아니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여 하는 것인지 구분하기가 어렵게 되고, 개인의 정체성에 혼란이 올 수도 있다. 일종의 자기 분열인 셈이다. 

 

 

자신을 상품화하면 자신을 정의내리는 잣대가 필연적으로 도구적, 비인격적, 불확정적으로 된다. '나라는 회사'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자질-특성, 가치, 신념 등-은 시장의 추상적이고 경쟁적인 기준에 따라 의식적으로 선택되거나 버려지고, 강조되거나 무시되어야 한다. (중략) 자신을 브랜드화하는 자는 거의 정기적으로 자신을 재발명해야 하는 것이다. -Joseph E. Davis, <The Commodification of Self>

 

퍼스널 브랜딩은 또한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어느 개인이 자기라는 브랜딩 마케터가 되어 시장이 중시하는 가치를 자기 가치로 삼게 된다면, 비(非)수단적 인간관계, 헌신, 의무 따위는 더 이상 그 개인의 존재에서나 활동에서 중요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즉 자신에게 금전적 이득을 가져다주는 인간관계, 사회활동만이 중요해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타인은 자기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퍼스널 브랜딩을 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먹고 살 수 있다고 하지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드로우앤드류가 설명하듯이, 퍼스널 브랜딩은 상품 판매 전략처럼 내 브랜드를 소비할 만한 타겟층을 정하고, SNS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홍보하며 이미지를 구축해야 한다. 즉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하는 나'를 꾸준히 홍보하여 잠재 고객들에게 '나'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서 심어주어야 하는 의식적이고 지난한 활동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퍼스널 브랜딩은 어느 분야에서 장인이 되는 것과 다르다. 오히려 퍼스널 브랜딩은 말 그대로 '나라는 상품'에 대한 마케터가 되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 널려 있는 상품들을 보자. 그러한 상품들은 고유한 가치, 즉 존재하는 것 자체에서 나오는 가치를 보유하고 있는가? 아니다. 상품은 어느 목적을 위해 쓰일 때(사용가치), 그리고 화폐와 교환될 때만(교환가치) 가치를 갖는 수단일 뿐이다. 하지만 이와 달리 인간은 자기 목적적이고 그렇기에 존엄하다. 그러한 인간이 상품이 되어, 그것도 일상적으로 상품이 되어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참고자료>

https://www.counterpunch.org/2013/10/04/personal-branding/

https://www.counterpunch.org/2017/07/14/trump-and-the-commodity-of-self/

https://en.wikipedia.org/wiki/Personal_branding

https://hedgehogreview.com/issues/the-commodification-of-everything/articles/the-commodification-of-self

https://www.youtube.com/watch?v=KuqnTdz5NUM 

https://www.youtube.com/watch?v=JWVMpTV7J1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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