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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tory

<오래된 미래>와 경제성장에 대한 성찰

by Life's Searcher 2021.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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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나는 이런 의문을 품고 있었다. 경제성장이란 무엇일까? 우리 사회에서는 대다수가 경제성장을 외치고 있는데 경제가 성장하면 정말 국민 모두가 잘 살게 될까? 우리나라는 현재 국내총생산을 기준으로 세계 12위 경제 대국인데 왜 힘겹고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을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나는 이런저런 책들을 찾아보았고, 그 결과 나름대로 답을 구할 수 있었다. 경제성장을 측정하는 지표는 국내총생산(GDP)이다. 국내총생산은 일정 기간 동안 한 국가에서 생산한 최종생산물의 화폐가치를 인구수로 나눈 것이다. 이 지표로는 최종생산물이 국민들 사이에 어떻게 분배되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아무리 한 나라에서 경제성장률이 오르더라도 그 국민들 모두가 잘 살게 되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면 생산된 부가 오직 소수에게만 집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GDP는 돈이 타인에게로 넘어갈 때마다 증가하기 때문에 GDP로는 인간의 행복이나 삶의 질을 알 수 없다. 오히려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해도 GDP는 증가하고, 범죄가 많이 일어나서 교도소를 늘려도 GDP는 증가한다. 그래서 GDP의 증가로 나타나는 경제성장이 꼭 사람들의 행복을 보장하지는 못 한다.

 

 

이처럼 나는 여러 책을 보면서 경제성장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는데 여러 책 가운데 특히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책이 있다. 바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쓴 『오래된 미래』라는 책이다. 이 책이 지닌 중요한 특징은 경제성장 혹은 경제개발이 무엇인지를 생생한 사례를 통해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스웨덴 출신 언어학자인 저자는 라다크 지역 언어를 연구하기 위해 라다크를 방문했다. 라다크는 인도 북부에 있는 지역으로 거대한 산맥들에 둘러싸인 고원지대에 위치해 있다. 저자는 비록 라다크 언어를 연구하러 왔지만 라다크에 머물면서 라다크 사람들이 지닌 가치관과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왜 라다크 사람들은 언제나 웃고 있는지, 어떻게 그토록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편안하게 살 수 있는지 저자는 궁금해 했다. 라다크 사람들은 대부분 소규모 정착지에 사는 자영농들이다. 그들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무엇보다 중요시했다. 이웃 때문에 난처한 상황에 처해서 화를 낼만 한 상황에서도 어느 청년은 화를 내지 않고 이웃의 처지를 생각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함께 사는 거잖아요.” ‘우리는 함께 사는 것’이라는 말을 저자는 라다크에 머무는 동안 여러 번 들었다. 라다크에서는 결혼, 장례 그리고 수확처럼 많은 일손이 필요한 때에 이웃끼리 서로 도와가며 일을 한다. 라다크 사회는 개인의 이익과 공동체의 이익이 상충하지 않는 사회이다. 사람들은 타인을 돕는 것이 곧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처음에 라다크 사람들이 항상 웃으며 자신감 넘치게 사는 모습을 보고 그것이 가치관과 종교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오래 머물면서 저자는 가치관이나 종교 못지않게 라다크의 사회구조, 특히 공동체 규모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깨달았다. 라다크에서는 한 마을이 대부분 100가구 이하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모든 주민들이 서로 직접 접촉하고 상호작용하며 살아간다.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서로 거래하기 때문에 속임수가 생기기 어렵고, 서로 함께 논의하며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지도 않는다. 또한 공동체를 스스로 관리해나가기 때문에 더 적절한 결정을 내릴 수 있고 모두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감을 가질 수 있다. 바로 이런 소규모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라다크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고, 다른 사람들이나 자연 환경과 깊이 연결되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라다크 사람들. 출처:&nbsp;https://nwpermacultureinstitute.org/2017/03/25/ancient-futures-learning-from-ladakh-free-film-and-potluck-in-salem-april-27th-630pm/

 

하지만 1974년 인도 정부는 라다크를 관광지역으로 개발하기 시작한다. 도로나 대규모 에너지 생산시설을 건설하고, 보건소, 학교, 경찰서, 은행, 방송국 등 여러 시설이 마을 외진 곳으로까지 확산되었다. 또한 화폐경제가 활성 되고 많은 양의 주요 품목들이 외부에서 라다크로 수입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농촌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도시로 옮겨왔고 그에 따라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여 라다크 중심지는 슬럼가를 닮아갔다. 마침 저자는 그 무렵에도 라다크에 있었기 때문에 개발로 인해 라다크 사회와 사람들의 정서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 잘 관찰할 수 있었다. 단적인 예로, 라다크에 가난이라는 건 없다고 이야기했던 한 청년은 이후 라다크를 찾은 관광객들에게 라다크 사람들은 너무 가난하기 때문에 도와달라고 말했다. 또한 라다크에서는 오랫동안 다수 불교도와 소수 이슬람교도가 큰 갈등 없이 공존해 왔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슬람교도 이웃들과 음식을 나누며 웃고 이야기하던 한 불교신자는 이슬람교도들이 불교도를 죽여 버릴 테니, 그들을 다 죽여 버려야 한다고 말하기에 이른다. 저자는 라다크에서 일어난 변화를 직접 목격하면서 이른바 진보라는 것이 사람들을 땅과 이웃, 그리고 자기 자신과도 분리되게 만들었다고 썼다. 행복하게 살아오던 라다크 사람들이 서구의 규범을 따르기 시작하면서 오랫동안 유지해 온 평온함을 잃어버린 것이다. 결국 저자는 문화라는 것이 개인의 특성을 형성하는 데 매우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여기서 ‘문화’라는 말은 우리가 음식을 먹고, 일을 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 등을 모두 포괄하는 총체적인 개념이다.

 

 

나는 개발로 인해 변화한 라다크 사회를 접하면서 오늘날 한국 사회를 떠올렸다. 한국은 짧은 시간 동안 급격히 산업화를 이룬 나라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한강의 기적’을 얘기하며 산업화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고, 경제성장은 여전히 우리가 추구해야 할 주요한 목표로 남아 있다. 한때 나는 한국의 경제성장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했는데 『오래된 미래』를 읽은 뒤 화려한 경제성장의 이면에 있는 그늘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농촌 공동체의 해체, 전태일로 상징되는 수많은 노동자의 희생, 도시 변두리의 판자촌, 환경오염, 사회 양극화 등 여러 문제가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러던 중 나는 맹목적인 경제성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정당인 녹색당을 알게 되어 당원이 되었다. 내가 알기로 녹색당은 우리나라 여러 정당 가운데 경제성장을 비판하는 유일한 정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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