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고 확실히 셸던 월린(Sheldon Wolin)은 비주류 정치철학자라고 느꼈다.
그의 이 길지 않은 글을 읽고, 비주류적 시각을 지닌 나는 그와 더 가까워졌다고 느낀다.
이 글에 나타난 월린의 생각을 정리해보면 대략 이렇다.
그는 '민주적 시민'이라는 화두를 사회에 던지고 싶다.
그리고 '민주적 시민'과는 무관한 '개인'을 지지하는 자유주의적 관점을 비판한다.
그는 또한 현대 정치적 조건 중 하나로 '탈정치화' 경향을 들고 이에 대해 우려한다.
최근 말 그대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정치경제 시스템이 정치마저 경제적 논리로 변형시키는 것을 비판한다.
사회에 만연한 비관주의에서 억압된 혁명적 충동을 읽는다.
혁명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탐색하기 위해 칼 마르크스보다는 존 로크(John Locke)를 참고한다.
타락한 정치를 복원하기 위해 기성 정치 구조, 국가 패러다임, 자유주의적 시민권 개념 등등을 거부해야 하고, 새로운 정치적 존재가 탄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맺는 다양한 관계 속에서 타인과 함께 행동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존재는 일상에 뿌리박은 채 배양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혁명적 행동은 풀뿌리운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민주적 시민', '탈정치화', '풀뿌리운동' 모두 내가 이 글을 읽기 전에도 탐구하고 싶은 주제들이었다.
1982년에 씌여졌지만, 이 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커다란 울림과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한다.
아래에는 이 글을 읽으며 내게 든 의문이나 단상을 간략히 기술하고자 한다.
그 당시 미국에서 '민주적 시민'이라는 주제에 대한 침묵이 존재했다면, 오늘날 한국에는 '민주시민교육'이라는 주제가 시민사회뿐 아니라 정치권과 심지어 공교육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그렇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오늘날 한국 사회가 그 당시 미국보다 민주주의, 시민권 등의 관점에서 훨씬 나아졌기 때문일까?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공과 사를 불문하고 시민교육 운운하고 있는 이유는 셸던 월린처럼 공통성을 인지하고, 공동의 목적을 위해 공동의 행동을 실천하는 민주적 시민을 양성하는 데 있지만은 않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오늘날 청소년들의 '인성'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시민교육에 국가가 관심을 갖는 건 시민들의 시민 역량을 키우는 것보다 어쩌면 국가의 통치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즉, 말을 잘 듣는 시민, 서로 싸우지 않는 시민,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하는 시민 등 사회의 불란을 최소화하고, 더 지배하기 수월한 시민을 양성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민주시민교육'은 경계해야 한다.
월린은 자유주의를 비판한다. 그렇지만, 자유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공동체주의를 지지하는 것 같지도 않다. 공동체주의라는 말은 이 글에서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공동체주의와 월린의 입장은 또 어떻게 다른 걸까? 공동체주의에서 바라보는 '민주적 시민'은 어떤 존재일까?
월린은 탈정치화를 언급하면서, 사회에서 배제된 자들이 어떻게 탈정치화 경향을 갖게 되는지 설명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탈정치화 경향을 보이는 건, 배제된 집단뿐 아니다. 사회 모든 계층에서 골고루 그런 경향을 보인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째서 중산층, 상류층 등 한 사회에서 배제되지 않은 집단도 그런 경향을 보이는 걸까? 그 메커니즘에 대한 설명이 이 글에는 없어서 아쉬웠다. 오늘날 정치의 토대가 되는 '공통성, 공공성, 함께'라는 가치가 이 사회에서 실종된 것 때문이 아닐까?
이 글에서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는 월린이 정치적 존재와 권력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다. 그는 일반적인 용례와는 다르게 이 둘을 설명한다. 정치적 존재는 특정한 장소에 뿌리박고 일상적 관계 속에서 상징적, 물질적, 심리적 '힘'을 얻는 존재이다. 이때 힘이란 흔히 말하듯 무언가를 발생시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경험, 분별력, 지혜, 관계에서 얻는 우울감 등도 포함한다. 월린의 이러한 설명이 신선하지만, 여전히 추상적이라 잘 와닿지 않는다. 특히 힘이라는 개념은 거의 모든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아 결국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바람직한 정치적 존재는 일상 생활 속에서 - 즉 직장, 가족, 친구, 공동체, 교회 등등 - 정치적 힘을 얻는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이러한 일상적 관계가 굴레로 작용하는 것을 너무 많이 본다. 심지어 이러한 관계는 한 사람의 사고, 감정, 인격, 즉 삶 그 자체를 파괴하기까지 한다. 자신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지옥 같은 관계 속에서 한 사람이 어떻게 정치적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자신을 지지해주고, 이해해주는 '관계망'을 일상 속에서 형성하는 게 관건이지 아닐까? 이렇게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 곧 정치적 투쟁의 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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