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집회에 다녀와서 / 2025년 5월
올해로 나크바(Nakba, 대재앙) 77년을 맞는다. 1948년 이스라엘이 절반이 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고향 땅에서 강제로 쫓아냈다. 재앙은 한번으로 그친 게 아니라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77년 동안의 재앙을 끝내기 위한 집회에 나는 참석했다. 장소는 토론토 시내였다. 팔레스타인을 위한 집회에 참석하는 것 처음이었고, 나 혼자 가는 거라 무척 떨렸다.
약속 장소에 참가자들이 모여있었고, 어색했지만 그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집회를 주최하는 이들의 외침에 따라서 구호를 외쳤다.
From the river to the sea, Palestine will be free (강에서 바다까지, 팔레스타인은 자유로워질 것이다.)
From the sea to the river, Palestine is almost free (바다에서 강까지, 팔레스타인은 거의 자유를 쟁취했다.)
No justice, No peace (정의 없이 평화 없다.)
We are all Palestinians (우리는 모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다.)
Free Palestine (팔레스타인에 자유를)
There is only one solution, Intifada revolution (항쟁밖에는 해법이 없다.)
One: we are the people (우리는 민중이다.)
Two: we won’t be silent (우리는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Three: Stop the bombing now now now now (지금 당장 폭탄 투하를 멈춰라.)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슬퍼졌고, 결국 눈물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옆에 아는 이라도 있었다면 그에게 기대어 펑펑 울고 싶었다. 많은 사람 속에서 구호를 외치는데 고통받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떠올랐던 것이다. 폭탄에 맞아 죽은 사람들, 다친 사람들, 겁에 질린 사람들,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나도 모르게 그 사람들이 떠올랐다.
나는 누리소통망 인스타그램에서 이번 집회 소식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소식을 알린 이는 팔레스타인 청년 운동(Palestinian Youth Movement)이라는 단체였다. 확실히 집회 참가자들 앞에서, 그리고 그 속에서 먼저 구호를 외치는 이들은 젊어보였다. 나중에 누리소통망에서 보니, 이들은 오래전 고향 땅을 떠나야했던 이들의 자녀들이자 그 자녀들의 자녀들이었다.
한바탕 짧은 울음을 터뜨리고나니 거리 행진을 할 차례가 왔다. 우리는 계속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도 집회 참가자들의 수가 워낙 많아서 그런지 길을 멈추고 시위대를 바라보았다. 어떤 이들은 시위대의 사진을 찍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구호를 함께 외치며 시위대를 응원하기도 했다.
한국의 시위와는 달리 이번 시위에서는 경찰이 시위대를 따라 옆에서 함께 걷지 않았다. 자전거를 탄 경찰 몇 명이 앞에서 시위대를 이끌었고 교차로에서 차들이 시위대 쪽으로 오지 못하게 막는 경찰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교차로에는 경찰관뿐 아니라 집회의 자원봉사자로 보이는 사람들도 함께 있었다. 틀림없이 행진하는 시위대를 차들로부터 보호하려는 것 같았다. 그렇게 보이지 않던 경찰들이 꽤 많이 – 아마 스무 명 정도 – 보이던 곳이 있었는데, 거기는 인디고(Indigo)라고 불리는 서점 건물 입구 쪽이었다. 자세히 보니 거기 있는 경찰들은 이 서점을 시위대로부터 보호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건물 옆을 지나갈 때 시위대 일부는 “부끄러워하라!(Shame!)” 하고 그곳을 향해 소리쳤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인디고 서점의 최고경영자가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에 연관돼 있어서 그곳 불매운동을 벌이는 단체들이 있다고 한다. 아무튼 그 서점 건물 옆을 지나갈 때 꽤 흥분한 집회 참가자들이 있었지만, 다행히 큰 소란이나 폭력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이번 집회가 한국에서 내가 참석했던 집회와 또 한 가지 다른 점은, 한국의 집회에서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데, 이번 집회에서는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 집회에서는 북을 치는 사람들이 한 열 명 정도 있어서, 시위대 앞 쪽에서 북을 치며 행진했다. 나는 이 북소리가 듣기 좋았다. 북소리가 내게 힘을 불어넣어주었기 때문이다. 차도를 행진하며 서너번 정도 잠시 멈췄는데 그때는 집회 참가자의 발언을 듣거나, 북을 치는 짧은 공연을 했다. 다만 발언하는 집회 참가자의 목소리가 멀리까지는 들리지 않아 아쉬웠다.
집회에서 맛볼 수 있는 여러 재미 중 하나는 집회 참가자들이 들고 있는 깃발과 손팻말을 보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깃발이 무엇보다 많았지만 아일랜드와 필리핀 국기, 사회주의 정당 깃발, 그밖에 여러 단체 이름이 적힌 깃발들도 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 필리핀 국기와 팔레스타인 국기를 앞뒤로 붙인 깃발을 들고 있는 사람이 눈에 띄었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어느 단체가 아니라 가족끼리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이었다. 아버지와 아들, 그밖에 다른 가족들도 같이 왔다고 했다.
다양한 손팻말들 만큼이나 다양한 인종을 이번 집회에서 볼 수 있었다. 아랍인, 라틴 아메리카인, 아시아인, 흑인, 백인, 그리고 유대인까지. 내가 유대인을 어떻게 구별했냐면 바로 그들이 입은 옷에 적힌 문구 때문이었다. “자유로운 팔레스타인을 위한 유대인들(Jews for Free Palestine)”.
집회 분위기는 슬프면서도 결의와 활기가 넘쳤으며, 분노로 가득찼다. 그리고 나름 즐거웠다. 먼땅 캐나다에서 같은 뜻과 바람을 가진 이들과 함께 있으니 외롭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스럽고 기뻤다. 그곳에 함께 모인 사람들에게서 나는 희망을 보았다.